착한아이 증후군: 성인이 되어서도 내면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, 착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억압하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
십수 년 가까이 극심한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지인이 있다. 조증 상태일 때는 한없이 들뜨고, 무리하게 활동을 많이 하고, 안 하던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다가 우울증이 찾아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. 안타깝기 그지없다. 자신이 이렇게 된 건 주위 사람 탓으로 돌려 버리고,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.
우리의 뇌는 3중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. 본능적인 뇌 - 감정적인 뇌 - 이성적인 뇌 이런 식으로. ('역행자'를 통해 알게 된 짤막한 상식이다 ㅎㅎ...) 나의 지인은 이성적인 뇌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걸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. 그래서 어떤 때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욕을 하고,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. 주위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. 같이 있으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고, 표정은 생기가 없고 그냥 멍하니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.
사실 이 사람은, 과거엔 굉장히 명랑하고 건강했었다.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, 형제들과는 두터운 우애를 나누었으며, 친구들에겐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. (왜 밑줄을 쳤는지 곧 알게 된다.)
항상 자기 자신보다 남을 우선시했다. 남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ㅡ 예를 들면 갑자기 사업이 망해서 빚더미에 앉은 사람을 보면 굳이 부탁하지 않았는데 돈을 빌려주려고 한다 ㅡ 굳이 그 사람이 무언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어도 괜히 나선다거나, 어떤 일이 주어지면 남들은 다 안 하겠다고 거절하는데 본인을 희생해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거나, 부모가 돈이 필요하다며 하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신의 월급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식이었다. 자신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늘 남들이 해달라는 것은 다 들어주며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. 왜냐고? 착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었으니까. 좋게 말하면 남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고, 나쁘게 말하면(속되게 말하면) '호구'였다.
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. 학창 시절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친구가 따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먹을 거를 사준다거나, 내 일이 아닌데 굳이 떠맡아서 무리해서 일을 한다거나, 많은 사람이 있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어떤 사람의 메시지가 '읽씹'을 당할 때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 '괜히' 답장을 해준다거나(정작 그 '읽씹'을 당한 사람은 이런 나의 '쓸데없는 친절한 메시지'에 별다른 감사를 표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.) 하는 식으로 남들에게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알게모르게 행동했던 적이 꽤 있었다. 나도 계속 이런 쓸데없는 '착함 강박증'에 빠져 있으면 언젠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 날이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. 다행히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기에 '호구'가 될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. 우리는 굳이 '요구되지 않은 지나친 착함'을 보일 필요가 없다.
아무튼 그 사람은 그렇게 수십 년을 살다보니, 내면에 쌓인 엄청난 스트레스, 후회감 등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조울증 환자로 전락해버렸다. 과거의 명랑했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고, 매일 하루하루 우울감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. 수년 간 그 사람을 금전적으로, 정신적으로 도와주었지만 변화된 게 없다. 끊임없이 '그때 그 사람은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~', '나는 너무 바보 같이 살았다~' 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. 정확히는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지만, 조금이라도 과거의 상처가 번뜩이면 다시 과거의 후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. 어떤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,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이성적인 뇌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현재 상황을 감정적으로만 바라볼 뿐...(물론 그 사람이 나을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줄 것이다. 인간의 심리를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.)
물론 대인관계에서 기본적으로 '친절하고 착한' 것은 좋은 매력으로 보일 수 있다. 착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. 그러나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, 너무 착하게 보이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나 자신만 망가지게 된다. 남들은 생각보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. 나 또한 타인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듯이.
명상, 마음챙김, 자기돌봄 등 이런 단어가 유행하는 것은 분명 많은 '착한 사람들'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.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잘 돌보기 위해선, 때로는 남의 부탁에 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지나치게 남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. '착함'을 버릴 필요는 없다. 다만 여기에 '나 자신'을 늘 생각했으면 좋겠다. ^^
나는 여기에 <역행자>를 읽으며 배웠던 것을 활용해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냈다.
* 스마트폰 앱들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(혹은 패치)를 한다. 완전히 새로 바뀌는 게 아니라, 기존 상태에서 몇 가지만 개선되거나 새로운 기능이 한두 개 추가되는 것이다. 이런 식으로, 우리 마음도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바뀔 순 없지만, 우리가 책이나 강연 등을 통해 배웠던 것들을 하나라도 직접 삶에 적용해볼 수 있다. (나는 우선 단체 채팅방에서 읽씹을 당하는 사람에게 굳이 답장을 해주려는 태도를 버렸다.) 이렇게 조금이라도 좋으니, 자신의 마음을 업데이트 해준다면 조금은 더 내면적으로 강해진 나 자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.